동북아시아지역자치단체연합


회원단체 한국 대구광역시

대구광역시

대구광역시 단체장 김범일

  • 국가명대한민국
  • 회원단체명대구광역시
  • 단체장명권영진

상징물

대구광역시 상징마크

상징마크

삼각형과 타원을 기본도형으로 해서 대구를 에워싸고 있는 「팔공산과 낙동강」의 이미지를 형상화 한 것으로 미래지향적 진취성과 세계 지향적 개방성을 추구하는 활기에 가득찬 도시적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시목

시목

전나무

대구광역시 시조

시조

독수리

대구광역시 시화

시화

목련

연혁

  • 대구는 대략 2만년전 구석기시대부터 우리지역에 사람이 살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에는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이 해방전까지는 대구역 부근, 달성공원 부근을 비롯 동남쪽으로는 봉산동, 대봉동에서부터 수성들에 이르기까지 줄지어 있었으나, 시가지의 확장으로 인해 지금은 대부분 없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고인돌은 당시 그 많은 고인돌을 만들 수 있었던 세력집단들의 정치 및 사회상과 생활상을 알려주고 있다.
     

    삼한시대의 대구는 변진 24국 가운데 한 나라로 발전해 왔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으며 삼국사기에 의하면 261년에 달벌성(達伐城)을 쌓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국에 속한 큰 읍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보인다.
    689년 신라의 도읍을 경주에서 달구벌로 옮기려 한 사실과 신라의 오악(五岳) 가운데 팔공산을 중악(中岳)으로 숭배했던 점 등으로 보아도 그때 당시의 대구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대구지역은 후삼국의 혼란기에도 신라에 대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요충지로 인식되어 후백제와 고려의 각축장이 되어 역사상 유명한 동수대전의 격전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 싸움으로 인하여 대구에는 왕건에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게 되었다. 즉 왕건의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는 파군재(破軍재), 왕건의 탈출로를 비추어 주던 새벽달이 빛났던 반야월(半夜月), 왕건이 혼자 앉아 쉬었다는 독좌암(獨坐巖) 등을 비롯하여 앞산의 은적암(隱蹟庵), 왕정(王井) 등은 이 싸움에서 유래한 지명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고려초기의 대구지역은 수성군, 대구현, 해안현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대구현은 수성군에 영속되어 있었고, 해안현은 장산군(현 경산)에 영속되어 있었다. 1143년(인종21년)에 대구현은 현령관으로 승격되면서 점차 그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고 몽고 침입기에는 팔공산 부인사가 대장경판과 더불어 소실되는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조선이 세워진 후 비옥한 평야지대를 끼고 있는 대구는 농업의 중심지로서 인구가 점차 증가하였으며, 1394년(태조3년)에 대구현이 수성현과 해안현을 영속하여 확장 발전됨에 따라 1419년(세종1년)에는 대구군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1466년(세조12년)에는 도호부로 승격되어 영남내륙 교통의 요지로서 그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1601년(선조34년)에는 경상도 감영을 대구부에 이전 설치하면서 경산현, 하양현, 화원현을 포괄하는 거대한 도시가 되었다. 이때부터 영남지방의 행정,사법,군무를 통할하는 명실상부한 중심지가 되었다.

     

    대구는 갑오개혁(1894년) 때까지 경상도 감영 소재지로서 영남지방의 중추기능을 계속하여 수행해 왔고, 일제의 침입이 시작되면서 대구는 항일저항운동의 거점으로서의 역할 수행과 근대적 교육을 통한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에는 대구의 서상돈, 김광제 등이 중심이 되어 일제의 침략으로 기울어져 가는 국권을 금연, 금주, 절미로 되찾으려는 평화적이고 자발적인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여 전국적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1949년에는 대구시로 개칭되었으며 1950년 6.25 동란시에는 낙동강 방어작전의 최후 보루도시로 민주주의를 지킨 역사에 길이 남을 대구 방어전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1960년 대구지역의 고등학생들은 2.28학생의거를 일으켜 반독재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2.28학생의거는 그 뒤 4.19의거로 연결되어 우리나라 민주주의 정착에 커다란 분수령을 이루게 되었다.

    1981년 달성군의 월배, 성서, 공산면, 칠곡군의 칠곡읍, 경산군의 안심읍 등을 편입하여 직할시로 승격하였으며, 1988년는 달서구가 신설되어 7개구의 행정구역으로 개편되었다. 1995년 1월에는 지방자치의 완성년도로 중앙정부직할의 시(市) 명칭을 대구광역시로 개칭하여 지방화시대의 원년을 맞이하였고, 1995년 3월에는 달성군을 편입하여 "7개구 1개군"으로 행정구역이 광역화되어 영남권 중추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을 개최하는 등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기에 이르렀다.

지역특성

글로벌 지식경제자유도시 / 섬유패션도시

일반개요

대구광역시 일반개요
구 분 내용
지세 및 기후
  • 면 적 : 884.46 ㎢
  • 위 치 : 북위 35。36′~ 36。01′, 동경 128。21′~ 128。46′ 서울과 300㎞, 부산과는 120㎞ 떨어져 있음.
  • 기 후 : 대륙성 기후, 연평균기온 14.6℃(최고 37.2℃, 최저 -10.1℃) 강수량 1,131.5㎜
인구(2012.10 기준)
  • 인 구 : 2,507,571 (남 : 1,250,263, 여 : 1,257,308)
  • 세대수 : 947,745세대
  • 세대당 인구 : 2.65명
주요연중행사
  • 대구국제뮤지컬축제,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대구컬러풀축제(자매도시의 날), 대구국제육상경기 대회, E-게임 페스티발, PID, DIOPS, 대구경북관광엑스포, 그린엑스포, 소방방재엑스포
주요관광지 문화유적
  • 팔공산, 갓바위, 동화사, 파계사, 대구향교, 국립대구박물관, 도동서원, 약령시

경제상황

대구광역시 경제상황
구 분 내용
경제수준
  • GRDP : 279,280(억원)
  • 1인당 GRDP : 11,243(천원)
산업현황
  • 서비스업 68.7%, 광업제조업 21.8%, 건설업 9.0%, 농림업 0.5%
  • 주요산업 : 기계금속, 자동차부품, 섬유
주요산품
  • 선박 및 자동차부품, 신발

기타

연락부서

  • 담당부서: 국제통상과
  • 주 소 : 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로 130번지
  • 전 화:+82-53-803-3265
  • 팩 스 : +82-53-803-3259
  • 홈페이지:http://www.daegu.go.kr